이천도자기이야기 이천도자기,이천도자기축제의 내력에 대해 아실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이천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효양산과 장동리, 설봉산성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세지역에서는 대형 항아리와 옹기, 연대가 훨씬 오랜 무문토기, 선사시대 토기 파편 및 삼국시대 각 나라의 기와와 토기파편들도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천은 적어도 청동기시대부터 토기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며 그 후 백제와 고구려 점령기를 거친 후 삼국시대 후반까지 패권 각축장이었던 탓으로 삼국 토기문화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천에서 자기제작을 뒷받침할 만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이천도호부의 특산품을 백옥(白玉)과 함께 도기를 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도자기제작을 뒷받침해주는 유적지는 사음동(沙音洞 - 사기막골)과 해월리(蟹越里), 마옥산(磨玉山), 관리(冠里) 가마골 및 점말가마터 등이 있습니다. 특히 사기막골은 예전에 가마터가 5군데나 있던 곳으로 이곳 도공들은 광주분원(廣州分院)에 공역을 나갔다고 전해집니다.

근현대적의미의 이천도자기 발생에 대해서는 칠기가마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청자나 분청, 백자등이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발전과 쇠퇴를 하여왔듯이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일대에는 칠기라는 검의 색의 생활도자기를 제작하는 가마가 두 곳 있어 도자기 제작의 맥을 잇고 있었습니다.

한편 1955년과 56년에 각각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와 한국미술품연구소에서는 고려청자, 조선백자등의 재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몇 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두 연구소에서 일했던 도공들은 자연스럽게 이천으로 자리를 옮겼고 각 지역의 대학 또한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도자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천에서 도자기를 연구하고 실습하기 위해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에 의해 이천에는 기존의 도공들과 서울에서 옮겨 간 도공들이 합하면서 상당한 활기를 띠게 되었지만 플라스틱 같은 새로운 재질의 식기들이 보급되면서 수요가 줄어들자 가마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으며 한 두 군데의 가마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일본인들의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지면서 전통도자기의 수요가 급증하자 가마들의 생산이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약 10년동안 일본인들에 의하여 호황을 누렸던 이천의 전통도예산업은 1974년 영부인 저격사건으로 한 · 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얼마간 주춤했다가 점차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까지 가마설립 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대 이전에 설립된 가마가 2개소, 61~66년까지 2개소, 66~70년사이가 1개소, 70~75년까지 4개소 등으로 1975년 이전까지 문을 연 가마는 총 9개소 뿐이었습니다. 1976년부터 80년까지 5년간 무려 18개소가 문을 열었고, 81~85년에는 다시 28개소, 그리고 86~88년까지는 불과 2년 사이에 27개 가마가 새롭게 문을 여는 등 76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이천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주요 생산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1년 4월 한국전승도예협회가 설립됨으로서 보다 조직적인 틀을 갖추고 매년 회원전을 통해 도예가들의 활동을 알리는 한편 도예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1987년 9월부터 시작된 이천도자기축제의 국제화와 한국도자기산업 발전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1995년 4월 이천도자기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들은 이천도자기축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매년 국내외의 사람들에게 이천 도자문화의 역사와 전통미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세계도자기 엑스포 개최를 현실화 되게 하였습니다.

이천도자기 특징

신비로운 푸른 빛깔과 우아한 선을 지닌 고려청자나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느낌의 조선백자등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감각을 말해주는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의 유산입니다.

근래에 와서 이천 특산물을 이야기할때에는 누구나 도자기를 첫 손가락에 꼽게 되는데, 그만큼 우리 이천이 도자기의 대표적인 산지로 이름나있고, 특히 300여개의 도자기 가마가 모여있는 신둔면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예촌으로 유명합니다.

이와같이 이천이 도자기의 명산지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에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흙이나 그것을 굽기 위한 땔나무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외적인 여건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전통 도자기를 재현해 낸 도공들의 장인정신 때문일 것입니다. 유근형, 지순택 같은 분들이 이천에 자리잡은 이후 많은 도공들이 모여들면서 도자기에 대한 끊임없은 연구와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청자와 백자, 분청으로 이어지는 관상용 전통도자기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의 생활도자기도 생산하고 있습니다.